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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유쾌한 기부

작성자 : 강미훈 작성일 : 15-11-09 02:10 조회 : 4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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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만 베풀라는 법 있나요?"… 보통 사람들의 유쾌한 기부  

[아너 소사이어티 1000명 눈앞]
[기부, 나와 우리의 행복] [1] "주머닛돈 털어서 나눠요"

-변상경씨 "기부는 평생의 꿈"
가난 싫어 13세 무작정 상경
직공… 분식집… 한식당… "기부하고 나니 참 홀가분"

-임기수씨 "사회에 진 빚 갚는 중"
"못배운 설움, 눈물 빼는 역경… 내 몫에서 끝났으면 해요"
기부 즐거움 알리는 게 樂

기부를 거부(巨富)들의 내리 베풂으로 여겼던 통념을 깨는 유쾌한 반전 이야기가 여기 있다. 평범한 이웃들의 나눔이기에, 고난 속에 피워낸 사회를 향한 보은이기에 더 아름다운 두 고액 기부자의 사연을 소개한다.

◇식당 수입 모아 기부, 변상경씨

"기부는 제 평생 꿈이었어요. 지체장애를 앓다 스물여덟 살에 세상을 뜬 형처럼 장애를 지닌 이웃들에게 많이 쓰였으면 합니다." 변상경(61·서울 강북구)씨는 아너 소사이어티 910호 회원으로 지난 9일 가입한 소감을 "참 홀가분했다"고 말했다.

"같이 고생해 번 돈을 기부하자고 말 꺼냈을 때 선뜻 응해준 아내가 참 대단하죠." 변씨가 운을 떼자, 아내 김미희(58)씨는 "내가 번 돈이라고 다 내 덕이 아니고, 돈을 묵혀둔다고 다 좋은 데 쓰이는 게 아니죠"라고 거들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앞에서 만난 변상경 아너 회원과 김미희씨 부부(왼쪽 사진), 굴렁쇠(타이어) 판매를 천직으로 살아왔다는 임기수 회원도 마찬가지다. 고액 기부를 선뜻 결심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은 자신의 장사 수완을 고객(이웃) 덕으로 돌리고 베풂 자체를 기꺼워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앞에서 만난 변상경 아너 회원과 김미희씨 부부(왼쪽 사진), 굴렁쇠(타이어) 판매를 천직으로 살아왔다는 임기수 회원도 마찬가지다. /김지호 기자·강원도민일보 제공
변씨는 "가난도 농사도 공부도 다 싫어" 열세 살에 청주의 중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돈을 벌려 쌀 두 말 짊어지고 서울 외가로 떠났다고 했다. "정봉역(현 청주역)에서 막둥이를 떠나 보내던 어머니의 애연한 표정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부모는 서울서 신혼살이 하다 청주로 귀향한 뒤 적응하지 못했고, 스물한 살 위 지체장애인 형은 동네에서 갖은 조롱을 받다가 이른 나이에 숨졌다. 이런 성장 배경도 상경을 부추겼다고 그는 말했다.

변씨는 용산 가구공장 등에서 직공으로 일하면서 터를 잡고 2년 뒤 부모를 서울로 모셔왔다. 스물네 살에 결혼해 1983년 아내와 함께 서울 방학동에서 분식집을 열었고, 이후 한식당·커피전문점으로 차례로 업종을 바꿨다. 일도 악착같이 했지만 장사 운도 따랐다고 한다. "1500원짜리 국수 팔면서 철가방에 음식 넣어 배달하는 게 하도 힘들어 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손님 떨어질까 봐 설날·추석에도 가게 문을 열었어요."

변씨는 학위를 따로 받지는 않았지만 틈날 때마다 인근 학원·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듣고 매일 아침 신문을 정독하면서 배움의 허기를 채워갔다고 했다. "제게 신문은 선생님이었어요. 신문을 통해 아너 소사이어티의 존재와 가치를 알고 몇 년 전부터 가입을 별러 왔습니다."

변씨는 4년간 맡았던 지역 신협 이사장 일을 작년에 그만뒀고, 새벽 성당, 아침 신문, 벗과의 저녁 술자리로 삼락(三樂)을 누리길 계속 중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정하신 가훈 '아래를 보고 살고, 위를 보고 걷자'를 그대로 잇고 있어요. 넉넉지 않더라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삽니다."

◇타이어 판매로 기부, 임기수씨

"어렸을 적 여기저기 진 빚을 갚고 있을 뿐"이라며 웃는 '춘천 기부왕'의 눈매가 뭉클할 만큼 선했다. 임기수(75) 한국타이어 춘천판매 대표는 "못 배운 설움, 눈물 빼는 이 사회 역경은 내 몫에서 끝났으면 한다"고 했다.

충남 연기(현 세종시)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빠듯한 집안 형편은 초등학교 졸업장만 간신히 허용했다. 임씨는 "춘천에서 사위가 운영하는 차량 타이어 판매·수리점에서 일을 배워 보지 않겠느냐"는 이웃 할머니 권유로 열여섯 살에 무작정 춘천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월급을 다달이 주지 말고 고향 갈 때 한몫 달라"면서 돈을 모았다.

성실함에 타향 이웃들의 도움이 보태져 몇 년 뒤 춘천 시내에 자신의 타이어점을 열었다. 그는 38년 전 첫 봉사 경험을 또렷이 떠올렸다. 서울대에 합격한 아들 학비를 걱정하는 이웃 노점상 아줌마에게 선뜻 10만원을 건넸던 그때를, "내가 대학 간 것처럼 들떴었다"고 그는 떠올렸다. 그게 계기가 돼 1980년 춘천 지역 로터리클럽에 들어갔고 장학금 지원, 헌혈, 청소, 배식봉사 등 물심으로 이웃을 도왔다. "손님이 다른 손님들을 소개해 줘 그분들 덕에 꾸준히 타이어 팔았던 거고요, 벌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주머닛돈을 털어서 모은 겁니다."

임씨는 이제껏 받은 기부상·봉사상이 몇백 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금을 받으면 그때마다 또 얼마간 돈을 보태 기부를 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을 포함해 모두 8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2010년부터 강원대와 춘천고에 매년 500만원씩 50년간 후원하는 약정도 맺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댓글목록

이준호님의 댓글

이준호 작성일

귀감이 되는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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