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중반, 질풍노도시기를 거쳐 지겨웠던 입시 생활, 자유의 목마름으로 찾은 노래방에서 이 노래 불러보지 않은 남학생들 없었다. 더크로스의 ‘Don’t cry’. 노래 좀 한다는 남학생들의 우상이었던 김혁건이 휠체어를 탄 채 등장한 모습은 대중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신마비 로커’, ‘장애 극복’ 타이틀로 검색창을 뒤덮였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불쌍한 타이틀을 붙여주느라 애썼다. 하지만 적어도 기자가 만난 김혁건은 불쌍하지도, 장애를 극복하지도 않은 그저 노래를 사랑하는 한 청년이었다.
“사고난지 4년, 자립생활에 두려움이 많은 그저 초보 장애인입니다.”
혁건씨의 사고 소식은 이미 방송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지난 2012년 전역을 마치고 컴백을 준비하던 도중, 오토바이 정면 충돌사고로 경추에 손상을 입었다. 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사지마비 진단을 받은 것이다.
중도장애인은 누구나 그랬듯이 혁건씨에게도 절망은 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우울증약도 먹었다. 하지만 더 큰 절망은 그토록 사랑하던 노래를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노래를 부를 수 없었어요. 폐활량이 비장애인의 4분의 1 수준이었거든요. 병원에서 호흡재활 일환으로 던져준 블루스 하모니카로 폐활량을 끌어올렸죠. 아버지가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도록 공업사에서 배 누르는 기계를 만들어오셨어요.”
그토록 꿈에 그리던 무대, 처음으로 발을 올린 것은 지난 2014년 10월1일,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척수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였다. 휠체어를 타고 올라온 혁건씨가 ‘You raise me up’을 열창하는 모습은 자리에 함께한 모두를 감동시켰다.
취재차 자리했던 기자도 “내가 아는 더크로스가 맞느냐”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 후 그는 SBS 스타킹에 방송되며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전신마비 로커’라는 타이틀로.
“그냥 로커일수도 있는데, 전신마비 로커로 나왔더라고요. 대본 받기 전까지 그런 타이틀일줄 몰랐죠. ‘휠체어 성악가’, ‘바퀴달린 성악가’ 예쁜 이름들도 많은데 하필…. 그래도 그냥 받아들였죠. 어떤 팬들은 안 좋아하는데 이제는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요. 좋은 노래를 해야겠다는 것이 중요하죠.”
지상파 방송의 효과는 대단했다. 짧은 방송에도 인터넷 기사가 250여개가 쏟아졌다. 관심이 많은 만큼 가족들의 상처도 컸다. “아파보이는 모습이 많이 나오니까 가족들이 싫어했어요. 몇 개 방송은 취소하기도 했죠. 너무 불쌍하게만 그려지니깐, 나는 밝은데….”
2년간의 투병기간, 국립재활원에서 만난 척수장애인 또래들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눴다. 마음이 풀린 그가 처음으로 꿈을 꿈 건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였다. SNS를 통해 노래를 배우고 싶다던, 만나고 싶다던 장애인들의 관심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지난해 초 한국장애인문화예술동호회를 만들어 매주 화요일 두 시간동안 장애인 노래교실을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노래를 가르쳤어요. 처음에는 장애에 대한 이해 없이 진지하게만 가르치다보니까 윽박도 지르고 이해하지 못했어요. 뇌병변장애인이 박자가 안 맞을 수 있고, 척수장애인이 목으로 소리 내는 것은 당연한 건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혼내기만 했어요. 1년이 지나서야 장애유형을 알고, 이제는 정말 즐기면서 노래를 가르치죠.”
하지만 요즘 혁건씨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다. 대학원에 복학을 하고 싶어도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이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수강신청 도우미, 대필 등을 요청했지만, 이동 지원만 가능할 뿐, 다른 도움들은 같은 과 일 대일 매칭 시에만 가능하단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 문의했더니 학부만 담당하고 있어서 대학원생은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복학은 하지 못했고요. 비장애인일 때는 전혀 몰랐죠.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요.”
다치기 전 음악학원을 하던 혁건씨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기억이 있다. ‘3층에 있는 학원까지 올라오기 힘들다’며 돌려보냈지만, 그때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이 된 그는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그 후 장애인을 위한 공연을 기획했다.
“지난해 장애인 분들을 위한 버스킹 공연을 했어요. 벚꽃축제 기간에 중랑천에서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올해는 장애인들의 접근성이 잘 돼 있는 반포대교 밑에서 공연할거예요. 추운 날 하면 (장애인들)못 오시니까 벚꽃 피는 따뜻한 날에요.”
초보 장애인 혁건씨, 장애인복지에 ‘장’도 몰랐던 그는 요즘 정책과 제도에 저절로 관심이 많아졌다. 곰곰이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던 그는 장애인으로 대중 앞에 서는 것,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알리는 것을 택했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 사회복지 박사 학위 이런 거 못 하거든요. 제 역할은 계속 대중 앞에 서서 장애인을 알리는 것. 불편함을 알려서 개선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때론 부딪히고 좌절하기도 하겠죠. 초보 장애인이니깐요. 그래도 다른 장애인들과 즐겁게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