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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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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미훈 작성일16-01-20 23:04 조회5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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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그렌트, ‘기브앤테이크’ 착한 사람이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과도하게 공감하며 너무나도 소심한 사람들의 비극

“나의 단점은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의 말이다. 어디 링컨뿐이겠는가. 이는 세상의 착한 사람들 모두가 안고 있는 고민일 테다. 이들은 지나치게 남을 믿으며 과도하게 공감하면서도 너무나 소심하다. 그래서 늘 베풀기만 하다가 손해를 보기 일쑤다.

무리한 부탁에 맞서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그냥 평생 이용당하며 살아야 할까? <출처: gettyimages>

세상은 약삭빠른 사람들로 가득하다. 착한 사람들은 이들에게 ‘호구’일 따름이다. 은근하고 상냥한 미소로 부탁을 하지만, 원하는 바를 얻어낸 뒤에는 안면몰수하곤 한다. 이럴 때면 억장이 무너진다. 하지만 그래도 착한 이들은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미지가 무너질까 걱정되는 까닭이다. 마음 밑바닥에서 돕고 싶다는 선한 의지가 꿈틀대는 탓에, 상대의 절실함에 눈감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착한 이들은 호구가 되어 버린다. 나도 이런 자신이 싫다.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다. 무리한 부탁에 맞서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그냥 평생 이용당하며 살아야 할까?

기버와 테이커, 그리고 매처

이런 고민에 빠진 이들에게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M. Grant)는 위안을 준다. 그는 인간을 기버(Giver)와 테이커(Taker), 매처(Matcher)로 나눈다. ‘기버’는 받기보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착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늘 자신이 상대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는지를 살핀다. 반면, ‘테이커’는 준 것보다 더 많이 얻기를 바란다. 이들은 ‘내가 내 것을 못 챙기면 누가 챙기겠는가!’ 라며 눈을 부릅뜬다. 이들에게 세상은 먹고 먹히는 정글과도 같다. ‘테이커’는 남들을 누르고 이익을 챙기는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매처’는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처로 살아간다. 이들은 ‘공평함’을 세상살이의 잣대로 삼는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살갑게 굴고, 공격하거나 이용해먹으려는 치들은 차갑게 내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셋 가운데 가장 나락으로 떨어지기 쉬운 자들은 누구일까? 두말할 것 없이 기버들이다. 그렇다면 출세하여 가장 꼭대기까지 올라갈 사람은 누구일까? 애덤 그랜트는 놀라운 반전을 들려준다.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꾸리는 이들 또한 기버다! 왜 그럴까?

여기저기 베풀고 덕을 쌓았던 착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평가가 좋다. 신세 진 사람들은 언젠가 그에게 보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출처: gettyimages>

그랜트의 설명은 상식에 가깝다. 윗사람들에게는 아부를 일삼으면서 아랫사람들은 사정없이 부리고 짓밟는 나쁜 상사를 떠올려 보라. 권력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안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될 것 같은 착각 말이다. 더 이상 이들은 아랫사람들의 기분이나 마음에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쁜 상사를 응징(?)한다. ‘험담과 뒷담화’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에 대한 평판은 점점 안 좋아지고, 마침내 상사가 휘청하는 순간, 그의 추한 뒷모습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그가 추락하기는 시간 문제가 되어 버린다. 반면, 여기저기 베풀고 덕을 쌓았던 착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평가가 좋다. 신세 진 사람들은 언젠가 그에게 보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결국 선한 마음은 좋을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겠다. 애덤 그랜트는 나눔에 대한 명언을 따다 들려준다.

“베풂은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필요가 없지만, 마라톤 경주에서는 진가를 발휘한다.”- 애덤 그랜트 지금. 윤태준 옮김, [기브앤테이크], 생각연구소, 2013, p.38

착한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펴게 하려면

그랜트의 설명은 위안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별 필요가 없다. 먼 장래에 나의 선행이 도움이 되면 뭐하겠는가. 나에게는 당장 눈앞에 알랑거리는 나쁜 부탁을 거절할 용기가 없다. 나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주장하려면 낯부터 붉어진다. 세상이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볼까 두려워서다. 나는 이런 내가 한심하기만 하다.

그랜트는 이 지점에서 정말 요긴한 해법을 안긴다. 먼저, 나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 보자. 연봉 협상을 하는가? 그렇다면 나 자신을 연봉 협상 당사자로 여기지 말라. 나의 연봉 협상을 돕는 조언자의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내가 아닌 내 친구가 지금 상황을 본다면, 친구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반론을 하고 주장을 펴겠는가? 제3자의 처지에서 나를 바라볼 때 상황은 보다 객관적으로 보인다. 착하고 여린 자신을 챙겨줄 ‘보호자’로서 행동해보라는 뜻이다. 무리한 부탁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 상황에 우리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뭐라고 따지며 나를 감싸려 들까? 어려운 상황에서 엄마인척 행동하다 보면, 어느덧 자신감 있게 반론을 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다.

나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 보자. 연봉 협상을 하는가? 그렇다면 나 자신을 연봉 협상 당사자로 여기지 말라. 나의 연봉 협상을 돕는 조언자의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 <출처: gettyimages>

이 보다 더 철학적인 방법도 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앞세우는 기술이다. 이 또한 별로 어렵지 않다. 불리한 연봉협상에서 왜 꼬리를 내리게 되었는가? 회사의 어려운 처지는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은 쪼그라질 주머니를 군말 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내 가족’도 그럴까? 나는 회사도 챙겨야 하지만, 내 가족도 보듬어야 한다. 나 자신을 ‘가족의 수호자’로 여겨보라. 가족이 없다면 ‘미래 가족의 보호자’로서 자신을 위치 지어 보자. 나만을 위해 주장을 펼 때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족’이라는 보호해야 할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주장을 펴야 하는 상황이면, 나는 고개를 들고 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선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노력할 때 당당해지기 때문이다.

여인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파리 한 마리 못 죽이던 사람도 조국을 위해서는 전쟁터에서 기꺼이 총을 든다. 이런 ‘기적’을 설명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보다 큰 무엇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정 착한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내는 진정한 이유이다.

그랜트의 조언이 도움이 될지 몰라도, 아직 걱정은 남는다. 누구나 착한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싶어 한다. 잇속을 챙기려 약삭빠르게 눈빛을 빛내는 자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착한 나는 이익을 놓고 서로 속이고 이용하는 이 상황이 싫다. 내 주장을 당당하게 펼칠 수 있더라도, 상대와 이익을 놓고 부딪치며 맞서는 상황은 버겁고 슬프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의 이런 마음이 세상을 밝게 만들어 준다. 긴 기차 여행을 예로 들어보자. 냉랭한 열차 안 분위기, 누군가 간식을 꺼내어 주변 사람들과 나눈다.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은 잠깐, 누구라 할 것 없이 먹거리가 있으면 서로 나누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가운데 대화와 웃음소리가 서서히 피어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은 따스하고 배려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분위기에 따라 기버가 되기도, 테이커가 되기도 한다. 착한 사람의 따뜻한 처신은 세상을 밝고 부드럽게 만든다. <출처: gettyimages>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 쓰며 사소한 잇속까지 챙기려는 상황에서라면 어떨까? 상당히 긴 시간을 함께 해도, 분위기는 딱딱하고 차갑다. 그랜트는 ‘선행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진단한다. 누군가 먼저 마음을 열고 호의를 베풀면 여기저기 마음을 열기 시작할 테다.

일터에서는 냉혈한인 사람이, 교회나 소규모 친목 모임에서는 더없이 따뜻하고 베풀기도 많이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착한 사람이 모인 집단에서 홀로 약삭빠르게 살아가기도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분위기에 따라 기버가 되기도, 테이커가 되기도 한다. 착한 사람의 따뜻한 처신은 세상을 밝고 부드럽게 만든다. 그러니 나의 착한 마음을 굳이 누르고 강해 보이려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정 선한 마음으로 살면서도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누구(무엇)을 위해 내 입장을 펼치고 있는가?”

누군가를 위한다는 이타적인 마음은 내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는다.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챙기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이다. 착한 그대는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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